Preparing for a Korean Wedding with My American Husband, Part 1: Budget, Venue, and Studio-Dress-Makeup Timeline

🌏 Life in Korea | Living with My American Husband 🌏 Language: 🇰🇷 KR | 🇺🇸 EN We’re a Korean–American couple who got married in Korea  May 2024 . We decided to hold only a Korean ceremony, while celebrating separately with our U.S. family with a nice dinner and photos later. Because of that, the entire process followed Korean wedding customs , which felt quite foreign to my husband. It was my first time, too, but I at least had some idea of what to expect from my friends and family. He, on the other hand, had never been exposed to how that process works in Korea — so everything felt new. For anyone preparing a wedding with an American or otherwise-foreign spouse unfamiliar with Korean wedding culture , I’m sharing our full wedding timeline and practical tips by stage based on our real experience.

유도분만 앞두고 찾아온 자연 진통! 자연 분만 출산 당일 풀스토리

🍼 Parenting Journal | 육아일기

🌏 Language: KR | EN

[11/25(화) 출산 예정일 D+4, 갑자기 찾아 온 자연 분만]

유도분만 날짜를 잡고 돌아온 다음 날 아침 7시. 눈을 뜨자마자 쎄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화장실에 가보니 출혈이 있었다. 내진혈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진통 강도도 좀 더 뚜렷했다. 일단 출근을 앞둔 남편에게 “아이가 오늘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고, 진통 주기 어플을 계속 띄워두고 간격을 체크했다.

5~10분 정도 간격으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출산 가방을 챙기고, 시간이 되면 빠르게 샤워 후 간단한 아침을 먹고 병원으로 출발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떴다.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일단 샤워를 하고, 어젯밤 사둔 호빵과 바나나 우유를 간단히 먹었다.

8시 40분쯤 카카오택시를 불렀는데 전혀 잡히지 않았다. 네 번의 시도 끝에 9시 10분쯤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진통 강도가 조금씩 세지는 게 느껴졌다. 어플로 계속 주기를 체크해보니 진통 간격이 5분 미만으로 짧아졌다.

9시 40분이 넘어 병원에 도착했다. 상황을 설명드리고 잠시 대기하니 바로 내진을 받을 수 있었다. 자궁문이 약 1cm 정도 열렸다고 했다. 집이 병원에서 조금 먼 거리라 바로 입원해 진통 촉진제를 투여하기로 했다.

입원 절차를 간략히 듣고 분만실로 향했다. 입고 간 옷을 모두 탈의하고 산모복으로 갈아입었다. 회음부 제모, 관장 등 약간 민망한 절차가 후다닥 지나갔다. 이 부분이 엄청 수치스러울 줄 알았는데, 아프고 정신도 없어서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 버렸다.

10시 30분쯤 왼쪽 팔에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도 분만실에 도착했다. 남편은 걱정 반, 기대 반의 표정이었다. 약간 들떠 보이기도 했다. 나도 떨리고 긴장됐지만 남편을 보니 마음이 조금 더 편해졌다. 기념이 될까 싶어 사진도 찍고, 아기가 태어나면 어떨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분만실 침대에 누워서 본 모습1

분만실 침대에 누워서 본 모습2

분만실 침대에 누워서 본 모습3 (진통 촉진제)

분만실에서 남편과 찍은 기념(?) 사진

11시가 되자 진통 강도가 점점 세지고 간격도 짧아졌다. 남편이 하는 이야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3초 들이마시고 6초 내쉬는 호흡법을 떠올리며 호흡에만 집중했다. 그래도 세 번 깊게 호흡하면 진통 한 번이 지나갔다.

12시, 진통 강도가 더 세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소리 내지 않고 견딜 만했다. 내진 결과 2~3cm 정도 열렸다고 했다. 4cm 이상은 열려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들었는데, 아직 2~3cm라니... 꽤 아픈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더 아파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시 반이 지나자 슬슬 너무 아파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가 됐다. 이렇게 아파서 소리가 날 만큼의 통증을 느낀 적이 있었나? 적어도 스무 살 이후에는 없었던 것 같다. 와... 진짜 너무 아프다.

1시가 조금 넘어서 한 번 더 내진을 했다. 4cm 정도 열렸다고 했다. 초산일 경우 이때부터 몇 시간은 더 진행된다고 하던데... 와... 정말 아찔했다. 이때부터는 너무 아파서 호흡에 집중조차 할 수 없었다. 진통을 잘 넘기려면 몸을 이완시키는 호흡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너무 아프니까 몸에 힘이 자동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옆에서 남편이 계속 손을 잡아주는 게 큰 도움이 됐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추웠는데 남편 손이 따뜻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1시 이후로는 너무 아파서 시간을 볼 정신도 없었다. 그저 아픈 게 빨리 끝나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한 번 견디고 또 한 번 견디고, 그걸 계속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신음이 아니라 "으아악"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가 2시 반인가 3시쯤이었던 것 같다. 간호사님이 후다닥 들어와 내진을 하더니 9cm가 열렸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이제 더 힘을 주지 말라고 했다. 아니... 내가 힘을 주고 싶어서 주는 게 아니라고요... ㅠㅠ

그때부터는 실제로 아기를 받을 준비가 시작된 것 같았다. 간호사 두 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들락날락했고, 잠시 후 담당 의사 선생님도 올라오셨다. 바로 눕고 다리를 벌리는, 힘주기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신 뒤 '흡!' 하면서 아래쪽으로 밀어내는 느낌으로 길게 힘을 주라고 하셨다.

하지만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신음이 나오고, 얼굴에도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얼굴에 힘쓰지 마세요", "소리 내지 마세요", "힘 길게 주세요" 하는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는데... 그게 안 된다고요 ㅠㅠ' 하는 마음과, '그래도 일단 하라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몇 번 더 힘을 주니 아기가 거의 다 나왔다는 말이 들렸다. 한 번만 더 힘주면 된다고 해서, 정말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부들부들 떨면서 아래로 힘을 줬다. 그 순간, '쑤욱' 하면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의사 선생님이 회음부 봉합을 하시는 게 느껴졌고, 약간 따끔거리긴 했지만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크고 힘차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우리 아기라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큰 울음소리였다.

봉합을 마치고 다리를 내리고 누워 있으니, 잠시 후 간호사분이 아기를 내 품에 안겨주셨다. 방금 태어난 아기인데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뻤다. 작고 조그맣고 울고 있는데도 예뻤다. 방금 전까지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 아기를 품에 안으니 정신이 확 들고 갑자기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이 조그만 아기가 우리 아기라니...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은 나

신생아는 체온 조절이 미숙하다 보니 바로 옷을 입히기 위해 신생아실로 데려갔다. 그동안 나와 남편은 분만실에서 이 놀라운 경험을 함께 나눴다. 서로에게 "엄마, 아빠 된 거 축하해"라고 말했다. 엄마, 아빠라니... 정말 묘한 감정이었다. 임신했을 때와는 또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드디어 우리 가족이 세 식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잠시 후 옷을 입은 우리 아기가 다시 돌아왔다. 방금 태어났는데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아빠를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귀여웠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방금 태어난 아기인데도 표정이 여러 가지로 바뀌는 게 정말 귀엽고 웃겼다. 이렇게 작은데 눈, 코, 입 다 있고, 표정도 있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몸은 따끈따끈했다. 작아서 부서질 것 같으면서도 따뜻하고, 정말 사랑스러웠다. 아기를 안고 여러 설명을 들었지만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종이로도 안내를 받았으니 나중에 다시 읽어보자고 생각했다. 모든 신경이 아기에게 쏠려 있었다.

우리 세 식구 첫 가족 사진

아기가 다시 신생아실로 돌아가고 나니 배가 고팠다. 아침에 호빵 하나, 바나나 우유 하나 먹은 게 전부라 너무 허기졌다. 다행히 5시에 병실에 입실하니 바로 저녁이 제공됐다. 미역국, 흰쌀밥, 백김치 등 정갈한 반찬들이 나왔다.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잠시 후 야식으로 나온 호박죽도 싹 비우고, 남편이 사온 빵도 먹었다. 뭘 좀 먹으니 살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7시에 아기를 보러 신생아실에 들렀다. 오늘 태어난 아기는 총 4명이었는데, 우리만 엄마 아빠가 함께 내려오고 다른 분들은 모두 아빠들만 내려와 면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보니 다른 분들은 모두 제왕절개로 출산하셔서 회복에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자연분만은 선불, 제왕절개는 후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낮에 아기 울음소리는 들었지만 산모 울음소리는 나밖에 없었다…ㅎㅎ 그러고 보니 낮에 그렇게 아팠는데 신기하게도 아기가 태어나고 나니 멀쩡해졌다. 정말 인체의 신비다.

신생아실에서 만난 우리 아기

그날 밤, 봉합 부위가 아파서 잠을 설쳤다. 괜찮을 줄 알고 진통제를 맞지 않았던 건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었다. 결국 새벽 2시에 내려가 진통제를 맞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첫 아이가 태어났다. 2025년 11월 25일, 우리 가족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하루가 지나갔다.

🍼 Parenting Journal | 육아일기

이 글은 ‘Parenting Journal | 육아일기’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임신 후기의 일상, 출산 준비,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느낀 감정들을 기록합니다.
태어난 직후부터의 육아 기록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여정으로,
훗날 아이에게 보여줄 소중한 성장 앨범이 될 예정입니다.

👉 다른 육아일기 보기: 육아일기 전체 보기

Comments